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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쓴, 결혼의 시즌Writing Season 2025. 3. 4. 08:47
이전에 결혼의 시즌이란 글을 썼으나 너무 장황해 다시 쓴 글
결혼이 참 어려운 시대다. 나 또한 결혼을 못 할 것 같은 두려움이 컸고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다. 결국은 결혼을 했지만 치열한 신혼과 아이를 키우면서 왜 결혼이 이토록 어려운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혼이 어려웠던 이유는 내가 결혼에 대해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은 과연 무엇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혼 전부터 지금까지 결혼에 대한 인사이트가 많다. 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결혼은 사람을 찾는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결혼을 어떤 사람을 만나는가의 문제로만 보는데, 이게 아니다. 결혼이란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다. 즉, 결혼이 돌아가는 방식을 아는 것이다. 그래야 결혼에 적합한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다. 본인도 결혼에 합당한 사람이 되고 어떤 사람을 만나야 될지를 알 수 있다. 이게 먼저다. 사람을 찾는 것은 그다음이다.
결혼은 인류가 수천 년간 존속하면서 정립하고 법으로 제도화해 놓은 엄청난 시스템이다. 여기에는 깊은 원리가 있다. 그러므로 이걸 모르고선 결혼을 하기 어렵고 결혼했다고 해도 삐거덕 될 수밖에 없다.
결혼은 개개인의 가치관과 기호로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이것은 마치 학교나 회사 모든 사회에 그에 맞는 규칙이 있는 것과 같다. 결혼도 비록 처음엔 두 사람의 것이라 뭔가 규칙을 세울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가정을 사회의 최소 단위로 두는 것처럼 두 사람의 결혼은 하나의 사회이다. 만약 두 사람이 결혼 시스템의 본질에서 벗어난 규칙을 세운다고 해도 그 결혼은 오래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결혼 시스템을 이해하면 결혼 생활이 쉬워진다. 결혼이 어려운 이유는 두 사람 간의 가치관의 충돌이 많기 때문이다. 두 플레이어가 규칙이 서로 다른 게임을 하는 것보다 규칙이 같은 결혼이란 게임을 하는 것이 진행 자체가 된다.
결혼이 사람을 찾는 문제가 아닌 이유는 사람은 누구나 위태롭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인생을 거는 일, 더 나아가 인류가 존속되는 일에 '사람의 어떠한가'를 따른다는 것은 무섭다. 그나마 좋은 사람을 찾는 문제면 조금 낫겠지만 요즘은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것도 사람 본성과 관계가 별로 없는 돈, 명예, 외모를 최우선 가치로 두고 사람을 찾는다.
결혼의 본질과 관련 없는 것을 계속 찾기 때문에 누군가를 만나도 결혼으로는 잘 모르겠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결혼을 생각할 때 뜬구름을 잡게 된다. 그런 상태로 결혼을 하게 되면 위태롭다. 그러므로 결혼이란 단단한 시스템을 신뢰해야 한다. 이 시스템에 두 사람이 서야 모두가 안전하다. 인류는 오래도록 이 결혼 시스템을 의지했다. 개인의 기호로 사람을 찾는 건 불과 반세기도 안 됐을 것이다. 과연 선조들이 무식해서 그랬을까?

김재욱 일러스트 "짚신도 헌신 짝" "결혼의 본질은 희생이다"
결혼을 해보니 결혼 생활이 힘든 이유는 서로 희생할 수 없는 본성 때문이었다. 나는 나조차도 인식하지 못했던 이기심으로 가득했다.
아내가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련의 과정을 옆에서 보면서 그 자체로 몸이 혹사되는 것을 보았다. 아내는 아이를 너무 원했기 때문에 스스로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겼지만 나는 남편으로서 옆에서 볼 때마다 충격을 받았다.
신혼 초에는 돈을 많이 모으고 싶어 아내에게도 맞벌이를 요구했지만 이런 요구가 나의 극한 이기심이란 것을 깨달았다. 내가 태어난 자녀를 봤을 때 그 자체로 엄청난 충만감을 느꼈기 때문에 돈까지 벌어와 달라 하는 건, 아무리 돈이 중요한 시대라지만 아니다 싶었다.
희생하는 아내, 사랑스러운 아이를 볼 때마다 이들을 어떻게든 반드시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는 데 돈이 중요하다면 아내와 아이의 몫까지 200% 300%, 내 몸을 갈아 넣어서라도 벌어 오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나는 신혼 때까지만 해도 전혀 그런 류의 사람이 아니었는데 내 안에 어떤 물질이 나오는 듯했고 어떤 일을 하든 전혀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기뻤고 두려움이 사라졌으며 하는 일이 다 잘 될 것 같았다.
결혼에서 서로의 헌신을 자처하면 결혼 생활이 물처럼 흐른다. 결혼 초에는 나를 인정해 달라고 존중해 달라고 애썼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아내가 힘들기 때문에, 남편이 힘들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서로에 대해 감사가 커지고 존경심이 싹튼다.
"남편과 아내가 희생이 어려운 이유"
결혼에서의 남편은 아내의 안전과 생명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희생이 전제된다. 제일 중요한 것은 그렇게 희생하겠다는 의지이다. 하지만 요새는 그렇게 희생하겠다는 의지만으로 아내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어렵게 됐다. 예전에는 가족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수단이 많았지만 현재는 돈이 거의 유일한 수단이 됐다(사실이 아니다). 요즘은 돈이 남들보다 적게 있다는 것만으로 그런 희생이 불가능하다고 느낀다. 성실하고 싶어도 소득의 격차에 좌절감이 있다. 그리고 돈이 많이 있더라도 돈이 있는 대로 개인의 행복이 먼저이고 나누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아내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으로 희생이 전제된다. 여자가 아이를 낳고 기르게 되면 그 자체로 몸이 갈린다. 하지만 여자 역시 개인의 행복이 우선시되는 세상에서는 아이를 낳기 주저한다. 아이를 가져도 그 희생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는다. 그리고 요즘 시대의 여자는 안전과 생명을 지켜줄 남편이 필요가 없다. 요즘은 전쟁도 약탈도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경제력도 갖췄다.
요즘 보면 남자와 여자가 애초에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상대의 존재 자체에 대해 감사가 없다. 그러니 결혼이 너무 어려운 것이다. 존재로서는 굳이 결혼이 필요하지 않다. 소유를 위한 결혼만 있다.

제주도 비자림 연리지 나무 (출처-트레블러버의 맛있는 여행) "문화가 비슷한 사람 만나기"
결혼의 시스템을 이해했다면 어떤 사람이 결혼에 좋은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 사람과 자신이 어울리는지 봐야 한다. 잘 어울린다는 것은 말 그대로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많은 것이다. 결혼은 부부가 인생의 끝 날까지 전체를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 어울려야 한다. 우린 어떤 사람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연리지 나무라는 천생연분의 상징이 있다. 이 나무는 서로 다른 나무였다가 가지끼리 만나 하나가 된 것이다. 이 나무를 제주도 비자림 숲에서 직접 봤다. 이 나무들은 종류, 토양, 날씨, 주변 환경이 모두 같다. 이 나무를 보고 어쩌면 천생연분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 또는 문화(文化, 결)가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결혼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부부의 커뮤니케이션이다. 문화가 비슷하다는 것은 비슷하다는 것이고 가치관이나 언어가 비슷하다는 뜻이다. 문화가 비슷해야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다.
가끔 보면 사람들이 성격이 비슷한 사람을 찾으려고 하는데 애초에 남녀는 성의 격이 다르다. 결혼해 보면 그냥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성격은 달라야 서로가 보완이 된다. 부부는 가정에서 양 날개 같은 역할인데 성격이 달라야 밸런스가 맞는다. 그리고 세상에 성격이 같은 사람은 없다. 성격보다는 원활한 대화가 가능하냐가 중요하다.
이런 사람은 가까이 있는 사람 중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출신이나 소속한 집단이 비슷하다든지 가족의 문화가 비슷한 사람이다. 다만 문화는 각자의 선대로부터 온 생각이나 언어 또는 생활 방식이기 때문에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각자가 문화가 닮은 사람을 잘 찾아보면 좋다.
나 같은 경우에는 상대를 찾을 때 옷 입는 방식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어떤 브랜드를 좋아하냐가 아니라 셔츠를 좋아하는지 후드티를 좋아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사고방식, 그 사람의 속한 문화를 엿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누군가와 소개팅을 했을 때 세 번은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가 옷 입는 방식을, 그 사람의 스타일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옷을 통해 자기 자신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자신만의 멋이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김재욱 일러스트 "짝꿍" "확신은 없다"
그렇게 해서 만난 사람이 지금의 아내이다. 계속해서 결혼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했기 때문에 아내가 나와의 결혼에 적합한 사람이란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고백을 했고 결혼을 위한 연애를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프러포즈를 하려니 평생의 인생이 무섭고 엄두가 나질 않았다. 친한 목사님께 조언을 구했다. 결혼 16년 차에 아기가 셋이나 있으신데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말을 해주셨다. 사람에게 확신은 없는 것 같다고 하셨다. 이 말이 위로가 됐다. 진짜 그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전한 생각이지만 결혼은 확신이 아닌 오직 스스로의 결심만 있을 뿐이다.

"세상이 아름다워진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는 길에 우산 없이 어떤 아이를 안고 가는 엄마를 마주쳤다. 평소였으면 그냥 지나쳤을 것 같은데 우리 아내와 아이가 생각이 났다. 내 우산을 그 아이와 엄마에게 씌워 드렸다.
결혼은 무척 힘든 일이다. 기존의 내가 깨진다. 그렇게 진짜 사회를 살아가는 법을 깊이 배운다. 나와 아내와 아이, 그리고 양가 부모님과 사회의 모든 존재가 귀한 사람들인 것을 깨닫는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세상이 좀 더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글이 누군가의 결혼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제 결혼 스토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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